잘 찍은 사진의 기준
사진의 고유한 특성
사진가는 먼저 사진의 고유한 특성을 파악해야만, 카메라의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현대의 사진술은 너무 간단하고, 또 주제를 알아볼 수 있는 영상을 매우 쉽게 얻을 수 있으므로(특히 인터넷매체를 통해서도 또한 디지털 및 영상을 통하여), 이런 기본적인 이론을 경시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내용을 겨우 알아볼 수 있는 사진과 의미심장한 사진 사이에는 엄청난 질적 차이가 있는 것이며, 전자는 무미건조한 반면, 후자는 흥미진진하다. 그래서 의욕적인 사진가는 자기의 표현매체와 작품의 특성, 및 거기에 따르는 표현기법을 익힌 연후에 사진을 제작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작품은 뛰어 날 수밖에 없다.
1. 정직성
카메라는 촬영된 주제나 사건의 현장 증인 임에 틀림없다. 이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사진은 다른 시각적 표현양식과는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회화는 기억이나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여 제작될 수 있다. 그러나 사건현장을 진실스럽게 기록한 사진은 하나의 다큐멘트이다. 사진에는 정직성이 있기 때문에 다른 미디어 (시각적이든 아니든) 보다도 사진을 더 신뢰한다. 그러나 카메라는 셔터를 누를 때마다 다큐멘트를 탄생시킨다. 다시 말하면 카메라의 입증성은 반드시 사진가의 의식하에 기록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진가는 신중을 기하여 셔터를 눌러야 하며, 그래야만 우수한 다규멘트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분별없는 촬영 행위는 작품의 질을 실추 시킬 따름이다. 분별 있는 사진가는 취미를 목적으로 하든 출판을 목적으로 하든, 항상 정직하게 작품을 만들고자 한다.
" 카메라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는 말이 있지만 , 사진은 오도될 수도 있다. 사진가가 일부러 거짓을 전하려 한다든지, 진실을 지각할 만큼 예리하지 못한다든지, 혹은 진실을 기록할 만한 능력이 없는 경우에는 진실이 왜곡되기 쉽다. 가령 선거인들의 불신감을 조장키 위하여, 일부러 한 유명인이 방심하고 있는 상태 ( 긴장하고 있어야 할 그가 연설을 듣다가 입을 일그러뜨리며 하품을 하는 순간)를 찍은 순간적인 셔터는 허위로 날조된 사진이라 할 수 있는 오해를 사기도 쉬운 것이다. 자연을 대상으로 한 사진에서도 거짓이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게으르거나 야외 촬영에 솜씨가 없는, 파렴치한 사진가들은 박제된 동물, 방금 사망한 동물, 냉동된 동물. 동물 표본등을 찍어서 진짜인양 호도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자신의 인격을 스스로 존중하는 사진가는 그런 허위성을 가까이하지 않는다. 사진가가 가장 효과적인 사진을 만들기 위하여, 주제의 몇몇 특성을 특히 강조, 표현하거나 과장하는 것은 허위성과 무관하다. 오히려 그런 과장은 현실을 영상화할 때 흔히 증발되는 주제의 특성(입체감, 색채(흑백사진) 및 동작을 상징적으로 묘사해 준다. 그런 기법을 쓰지 않고서는 주제를 올바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제는 가장 중요한 성질을 상실하기 때문에, 그 기록은 완전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2. 정밀성
사진 미디어는 주제를 극히 정밀하게 묘사한다. 원근감으로부터 미세한 디테일에 이르기 까지. 이 절대적이고도 자동적인 정밀성은 다른 미디어의 추종을 불허한다. 원근감에 의한 디오토오션이란 말은 전경과 원경의 공간관계가 현실과 다르게 나타나는 것, 또는 실제로는 평행한 선들이 교차하는 직선들처럼 보이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이런 이상한 효과는 사람의 잘못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것이지, 사진매체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사진가가 부적당한 렌즈(광각렌즈를 사용하거나,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촬영하거나, 주제를 화면에 잘못 배열할 때 그런 디오토오션이 생긴다. 한편 관람자는 그런 사진을 보고 덮어놓고 이상하다고만 생각하면 아니 된다. 자기의 시각기준에 따라서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육안보다 더 넓은 시계를 보여주려면 그런 렌즈 가 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쨌건 사진의 퍼스펙티브( 3차원적인 물체를 2차원의 사진화면에 투영시킨 것)는 항상 기하학적으로 정확하다. 그래서 경험 있는 사진가는 한 렌즈의 퍼스펙티브가 마땅치 않으면 다른 방도를 취한다. 이를테면 초점거리가 더 긴 렌즈를 쓰든가, 아니면 주제와 카메라 간의 거리를 더 길게 잡는다. 그러나 관람자는 퍼스펙티브가(실제와 다르게) 표현된 사진을 접하더라도 , X선 사진 ( 주제를 육안으로 보는 것과는 아주 다른 형태로 표현해 주는 )을 보는 것과 같은 자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런 자세로 본다면, 어안 렌즈가 잡은 광각사진 ( 여기서는 퍼스펙티브가 구면형으로 나타난다. ) 도 그렇게 이상해 보이지 않을뿐더러 , 우리의 시각을 확장시켜 준 사진술의 업적에 대하여 오히려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사진술만큼 디테일을 정밀하게 재현해 주는 시각 미디어는 없다. 19세기의 은판화나 철판화는 선예 한 사진에 비하여 거칠어 보인다. 대개의 사진가들은 이 특성을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나머지 그에 대하여 심사숙고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진이 간신히 선명성을 보유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정도의 의문도 제기하지 않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아예 사진의 선예성을 백안시한다. 그리고 어떤 예술가들은 그들 나름의 예술을 창조한답시고, 흐림 막을 써서 닥치는 대로 흐릿한 사진을 만든다. 한편 사진매체의 정밀성을 최대한 이용하면 더 효과적인 사진을 창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선예성을 맹신하는 나머지 실물이상의 질감이 부각된 사진을 만든다. 그런가 하면 육안은 렌즈만큼 사물을 정밀하게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진가 들은 중도적 노선을 취한다. 물론 극명한 사진이 좋으냐 아니면 부드러운 사진이 좋으냐를 규정짓는 원칙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직접 보는 것보다 더 정밀하게 사물을 묘사하는 사진의 리얼리티는 사진 미디어의 귀중한 일면이다. 그러므로 사진의 선예성을 단순히 인지되는 것으로 그치거나, 나쁘다고 배격되거나, 소홀히 취급되는 것보다는 오히려 창의적으로 개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세계의 다채롭고 경이로운 제국면을 주지시키는 데에 적용돼야 한다.
3. 기록의 민첩성
사진 프로세스의 세 번째 특성은 사물을 빨리 기록할 수 있는 속도이다. 대개사진은 수분의 1초 만에 기록을 마치는 반면, 문장이나 회화는 몇 시간, 며칠 혹은 몇 주일 걸려야 기록을 마치게 된다. 이 기록의 민첩성은 다른 미디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 또 하나의 귀중한 재산목록이지만, 반드시 유리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런 경우에는 유리하다 : 시간이 제한돼 있어서 다른 기록방식으로는 도저히 기일 내에 일 을 마칠 수 없는 경우, 빨리 서둘러서 일을 마쳐야 할 경우, 또는 대상이 빨리 움직이고 있어서 육안으로는 도저히 지각할 수 없는 경우 등등. 이런 경우 사진술은 다른 어떤 기록 수단보다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며, 사진이야말로 기록이 가능한 경우도 상당히 많다. 그러나 기록의 민첩성과 조작의 간편성을 과신하는 사람들은 수많은 사진을 찍으면 그중의 하나는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라는 확률적인 가정하에 마구 사진을 찍어낸다. 이것은 재료와 시간만을 낭비하는 비경제적이고도 불합리한 방법일 것이다. 일반이 잘 모르는 사진의 약점은 사진이 시간의 흐름 중에서 극히 짧은 일 순간만을 기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회화는 다수의 순간과 양상을 포괄적인 것으로 종합한 전체 ( 즉 주제의 상징적인 개념)를 보여준다. 사진은 주제 (인물의 보편적인 성격보다는 빨리 지나가서 잡기 어려운 순간만을 강조하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 ( 감정의 변화 ) 중의 특정한 일순간만을 포착하기 위하여 일부러 사진술이 채택된 경우가 아니면, 그림보다 불리할 때가 많다. 이런 문제 ( 특히 초상사진에서 야기되는 )를 의식한 사진가는 주제를 예의 관찰하여 원하는 순간과 성취 방법을 포착할 때까지 열정을 자제하면, 이런 핸디캡을 능히 극복할 수 있다.
4. 다색의 단색화 ( 單色化)
이것은 사진매체에만 국한된 특성은 아니지만, 흑백사진의 성질 중에서는 가장 두드러진 특성이다. 어떻게 보면, 흑백사진의 톤 ( 色調) 은 값싼 색채의 대용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하튼 사진은 재현적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진은 이미 주제의 중요한 두성질 (깊이와 운동)를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색채의 상징화는 사진의 인상을 크게 좌우하긴 해도, 사진의 해석력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삼라만상은 색채를 띠고 있다. 그러므로 칼라사진은 상당히 재현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대개의 자연의 색채는 광원의 색깔과 조명도에 따라 끊임없이 변모하는 피상적인 것이다. 예를 들면 눈은 희다고 하지만, 참으로 흰 것인가? 아침 햇살이 눈 덮인 산정을 비추면, 눈은 핑크색으로 물든다. 석양빛을 받으면 황금색을 띤다. 해가 지고 반 시간쯤 지나면 파르스름해 보인다. 이 색깔 중에서 어느 것이 참된 눈의 색인가? 사람의 얼굴을 생각해 보자. 흔히 얼굴색은 살 색이라 하지만, 과연 그럴까? 무수한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빛으로 보거나 울창한 숲 속에서 보면, 얼굴이 녹색을 띠는 듯하다. 빌딩 옆의 탁 트인 그늘에서, 푸른 창공으로부터의 반사광으로 조명되면 같은 얼굴이라도 파르스름해 보인다. 직사광선을 받을 때에는, 모자챙의 그늘에 들어간 부분은 거의 까맣게 보인다. 그러면 어느 것이 참된 얼굴색인가? 실제로 그런 색채들은 얼굴을 참답게 표현함에 있어 얼마나 가치 있고 중요한가? 이 얼굴을 찍은 칼라 슬라이드( 숲 속에서 녹색을 띤 것과 환한 그늘에서 청색을 띤 것 )를 상상해 보자. 그것들이 실제의 색조를 정확하게 재현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색이 본연의 살색일까? 만일 이 슬라이드를 동일한 얼굴을 찍은, 우수한 흑백사진과 비교한다면, 비록 색채는 없어도 흑백사진의 인상이 녹색이나 청색으로 물든 얼굴보다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한 얼굴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따져보자. 부단히 변화하는 피상적인 색채인가? 아니면 골격의 구조로 결정되는 얼굴의 형태(빛과 그림자에 의한 윤곽, 양미간의 간격, 입술의 곡선, 코의 모양 등 ) 인가? 객관적인 분석은 우리를 단 하나의 결론으로 이끈다. 순간적인 상태를 정밀하게 ( 실은 피상적인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 기록할 필요가 있을 때엔, 칼라사진으로 촬영해야 한다. 그러나 주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일시적 또는 우연한 영향력을 전혀 받지 않는 본성을 묘사코자 할 때엔 신축성이는 흑백사진으로 표현함이 바람직하다. 물론 이것은 사진가가 추구하는 특징이 색채가 아닌 경우에 한한다.
흑백사진은 재현보다도 상징에 역점을 두기 때문에 표현의 진폭이 크다. 그래서 사진가는 중요한 성질을 강조하고 방해되는 요소는 극소화 시킬 수 있는 것이다. 순수한 시각적 관점에서 흑백사진을 면밀히 분석해 보면, 화면에 특징과 힘을 주는 것은 다양한 톤의 계조 ( 階調, gradation )가 아니라 순수한 흑과 백이다. 검정은 힘을, 그리고 백색은 광명을 상징한다. 흑과 백은 단순한 색채의 대용물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그리고 흑과 백의 조화효과는 색채상실의 보상을 초월하는 새로운 가치(자연에는 없는) 시각적 가치의 창조를 가능케 한다. 흑백사진을 통하여 우리는 참신하고 박력 있는 시각경험을 쌓을 수 있다. 왜냐하면 순전히 흑백으로만 구성된 사진은 독특한 추상미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주제를 다루든 간에 흑과 백을 멋있게 구성하면, 매우 효과적인 조화미를 창조할 수 있다. 대개의 추상사진과 포토 그램은 흑백의 패턴이 빈틈없는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기에 매료되는 것이다. 시각예술적인 입장에서 볼 때, 그런 조화미가 없는 사진은 심미적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 주제의 내용보다는 흑, 중간토운, 백으로 구성되나 추상미의 진가를 파악할 줄 아는 능력이 예리한 사진가의 척도이다.
흑백사진의 충격성과 아름다움의 감상법을 익히는 최선의 방법은 : 그런 계통의 사진을 연구하거나 , 자연을 관찰할 때 그의 양상을 명암의 정도로 따져 보거나, 주로 흑백이 지배하는 화면을 구성해 보는 것이다. 예술가의 관점에서 볼 때, 어떻게 하면 현실을 추상적이고 예술적인 형태로 묘사하는 동시에 그의 특징을 살릴 수 있느냐 하는 전래(傳 來) 의 문제를 재미있게 해결해 주는 것은 흑백사진이다.
인간은 오랫동안 추상화에의 끈질긴 집념을 지녀 왔다. 그것은 단색과 다색의 표현양식이 수천 년간 공존해 왔다는 사실로써 입증된다. 더욱이 칼라사진의 거장들도 그들의 작품의 상당량을 흑백으로 제작하는데 , 그 이유는 흑백사진이 칼라사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시각적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 칼라사진은 주제의 색체를 정확하게 그려 내기 때문에 재현력을 과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람의 색감은 다분히 주관적인 것이어서, 자기의 색채 기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부자연스럽게 보인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흑백사진은 본디 비현실적인 것이므로, 색채를 그에 해당하는 흑백톤으로 전환시킬 때 다소 차질이 생겨도, 화면의 재현도에는 거의 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창조적인 사진가는 톤, 밸런스를 자유자재로 변경시킨다. 그는 표현 목적에 따라 전반적인 콘트라스트를 강화하기도 하고 약화시키기도 한다. 혹은 적절한 필터를 써서 특정한 색채를 더 밝게 묘사하기도 하고 어둡게 묘사하기도 한다. 그는 톤의 분리를 강화할 수도 있고 강조하고 싶은 데를 강조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요컨대 자유의사에 따라 주제의 색채를 흑백색조로 변환시킨 흑백사진은 칼라사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격조 높은 추상미를 풍긴다. 이 말은 훌륭한 대리석 조각은 쇼윈도의 마네킹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논리와 비슷하다. 더욱이 풍부한 상상력과 재능으로 창조된 흑백사진은 그 힘찬 흑백의 충격만으로도, 주제 그 자체의 실제 인상을 초월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우리는 리얼리티가 예술로 고양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5. 계조 ( 階調: gradation)
흑백사진의 또 하나의 특장은 중간색조 ( 회색 톤 ) 를 매우 섬세하게 표현할 뿐만 아니라 흑에서 백에 이르기까지의 무수한 단계를 하나하나 정교하게 표현하는 가능성이다. 그래서 흑백사진의 깊이나 볼륨은 다른 매체의 그것보다 더 완벽해 보인다. 이 특성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노련한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 노출이 과다이거나 현상부족인 네가는 콘트라스트가 약하다. 노광 부족이거나 적정이상으로 현상된 네가는 컨트라스트가 너무 강하여, 중간 색조가 부족하다. 그리고 콘트라스트가 적정하지 못하여 경조( 硬 調) 나 연조 ( 軟 調)의 인화지에 인화되어야 할 네가는, 색조가 불만족스러워서 보통 인화지에 인화될 수 있는 네가와는 달리 풍부하고 섬세한 계조를 보이지 못한다.
6. 음화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
사진술은 포지티브 이미지를 네거티브 이미지로 반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러나 사진 미디어의 다재 ( 多枝 ) 한 잠재력을 탐색하려는 창의적인 사진가는 다음을 유의해 두는 것이 좋다. 주로 실용적인 목적에 사용되어온 청사진(靑寫眞) ( 까만 바탕에 백선이 그려져 있는 것 ) 은 네거티브 프린트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흔히 기술 계통의 설계를 복사하는데 쓰이는 이런 청사진은 음화보다 판독하기 쉽다. 검은 바탕의 백선은 흰 바탕 위의 흑선 ( 밝은 데서는 흐리게 보이고, 눈을 피로하게 한다. ) 보다 더 뚜렷하게 보인다. 결론적으로 음화는 , 특히 추상적인 주제가 등장하는 경우에는, 음화보다 강렬한 인상을 준다. 네거티브 프린트는 양화와는 달리 음부의 디테일을 잘 살려준다. 왜냐하면 어둡게 나올 부분을 명부(明 部)로 반전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전이라는 보도(寶刀)를 휘두르기만 하면, 밝게 조명된 부분은 양화로든 음화로든 선명하게 묘사되므로, 음화의 인기가 더 큰 것인지도 모른다. 더욱이 청사진의 경우처럼 음화는 주제의 구조적 특성을 양화보다 훨씬 강하게 부각한다. 그리고 포지 필름과 네가 필름을 약간 어긋나게 겹쳐서 인화하면, 소위 릴리프포토 란 재미있는 추상효과를 만들어 보일 수도 있다. 완벽한 형태를 갖춘 음화는 이색적이어서 저절로 뭇사람의 시선을 끈다. 이런 성질에다 선명성을 가미시킨 음화는 공업제품 (형태가 어느 정도 추상적이지만, 원래 싱거워서 특이하게 표현되어야만 멋있게 보이는)의 광고매체가 될 수도 있다.
7. 전경으로부터 무한원(無限遠)까지의 시야(視野 )
사진 프로세스의 가장 유용한 특성 중의 하나는 카메라의 시계가 거의 무한하다는 점이다. 눈은 10센치 이내에 있는 물체는 명확하게 보기 어렵고, 수백 미터 이상의 거리에 있는 것은 디테일이 불분명하나 물체가 충분히 커야만 간신히 보인다. 그러나 렌즈는 거의 전경에서부터 무한원에 이르기까지의 전 범위를 선명하게 커버한다. 우리는 지평선 부근에 있는 태양, 달, 산 등을 볼 수 있지만, 그런 먼 물체들은 너무 작게 보여서 디데일을 알아보기 힘든다. 그러나 초점거리가 긴 렌즈는 디데일이 잘 산 확대된 상을 가까운 곳에 맺어준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물체의 경우에는, 초점거리가 짧은 클로즈업 렌즈가 영원의 베일을 쓰고 있는 微視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육안의 시각은 고정돼 있는 반면, 카메라의 렌즈는 우리가 원하는 여하한 시각 180。혹은 그 이상이라도 커버하도록 설계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카메라는 어떤 곤충이나 물고기처럼 등뒤까지 볼 수 있다. 그런 초감각 렌즈의 퍼스펙티브는 직선형이 아니라, 크리스마스 트리에 쓰이는 공모양의 거울에 비친 상처럼 구면형이다. 그러나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이 구면형의 퍼스펙티브는 직선형의 퍼스펙티브 보다 현실에 가까운 것이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실제로 응용할 수 있기 때문에 , 그것은 또 하나의 사진의 특성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특성을 현명하게 이용함으로써 아주 새로운 시각 경험을 쌓게 되는 것이다.
8. 광선을 조절하는 능력
조명이 어두어질수록 , 물체를 보는 시간의 장단이나 눈의 긴장도에 관제 없이, 우리는 그것을 똑똑하게 보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필름은 각종의 낮은 조명도에 각각 달리 반응한다. 아무리 빛이 약하더라도 빛이 있기만 하면 , 필름은 충분히 오랫동안 노광 시킴으로써 사진을 만들 수 있다. 왜냐하면 필름의 노광 유제는 육안과는 달리, 상을 새길만큼 빛이 강해질 때까지 , 빛을 조금씩 축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특히 천문학자나 천체물리학자에게는 더없이 귀중한 사진의 특성이다. 그 이유는 성능이 좋은 망원경으로도 희미하게만 보이는 은하나 별을 촬영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보통 사진가는 밤에 노광을 충분히 길게 줌으로써 디테일이 잘 산 야경사진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너무 장시간 노광을 주면 , 디테일이 지나치게 선명하여( 청명한 날 대낮에 찍은 사진처럼 ) 밤을 상징하는 어둠, 무우드, 신비감등을 맛보지 못하게 한다.
9. 동작 기록의 가능성
사람의 시각은 빠른 동작을 형성하는 일련의 순간 상태들을 판별할 만큼 민감하지 못하다. 머이브리찌가 특별히 고안한 장치로 연속사진을 찍어서 실증을 보여준 1877년 이전에는, 질주하는 말의 네 발이 동시에 땅에서 떨어질 수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의 실증은 당시 유행하던 전쟁화를 그리던 화가들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현대의 고속사진은 새의 날갯짓까지도 고정 시킬 수 있다. 사진술의 또 하나의 업적은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현상을 보여 줄 수 있는 가능성이다. 이로 인하여 인간의 시야는 점점 넓어진다. 대개의 카메라의 최고속 셔터 스피드는 8000분의 1초이다.
追寫( panning ) 날으는 새를 엽총으로 겨냥한 것처럼, 카메라를 회전시키다가 셔터를 누르는 기법의 방법을 쓰면, 이 셔터 스피드만 가지고도 어지간히 빠른 동작을 포착할 수 있다. 그러나 500~ 1,000,000 분의 1초 동안 발광하는 전기 발광은 조명이 너무 어두워서 충분히 빠른 셔터 스피드를 쓰지 못하는 경우에도 초고속으로 움직이는 물체의 단면을 기록할 수 있다.
10. 절단(프레이밍)과 집중
카메라는 공간의 특정한 일부분만을 주변의 혼미로부터 절단하여, 그것을 완벽하고도 독립적인 원형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의 육안은 그런 기능을 하지 못한다. 불행이 도, 많은 사람들은 사진의 이런 특성을 경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진의 완전성과 절단성을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진을 찍을 때마다 현실의 한 도막이 절단되어 나온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이 편린(주제)을 가장 충격적인 형태로 표현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이런 바람직한 성과를 거두려면, 주제가 어지럽고 쓸데없는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하며, 나아가서는 예술적인 감흥을 일으키도록 표현되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만족시키려면 자신의 촬영 목적을 명백히 해야 하며, 또한 사진이 전해 줄 의미를 확실히 정해야 한다. 이를테면 구체적인 사실을 서술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무형의 감정을 전하려는 것인지를 확실히 밝혀야 한다. 주제가 특수한 사례(事例)로 취급될 것 인지, 아니면 여럿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것으로 취급될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주제를 다큐멘트할 것인가, 아니면 그의 함축성을 강조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거기에 따라 주제는 롱 셔터 ( 주제와 환경과의 관계를 밝힘)의 방법으로 촬영되기도 하고, 클로즈업의 기법 ( 디테일을 강조하는 집중적인 다큐멘테이션 )으로 촬영되기도 한다. 그리고 예리한 다큐멘테이션이냐 아니면 무우드의 상징적이냐에 따라 광선의 질을 선택해야 한다. 사진의 화조(畵調)는 주제의 무우드에 따라 하이키가 되거나 로우 키가 된다. 뿐더러 사진의 콘트라스트에도 마음을 써야 한다. 약하게 해야 효과적인가? 아니면 강하게 해야 효과적인가? 요컨대 주제는 흥미를 끌도록 그리고 강렬한 인상을 풍기도록 구성되어야 한다.
11. 적외선으로 부터 자외선까지의 감광성 (感光性)
우리의 육안은 전자파의 스펙트럼 중에서 가시광선이라고 하는 극히 좁은 영역만을 빛으로 감각한다. 그러나 사진유제는 파장이 짧은 X선과 자외선으로부터 파장이 긴 적외선과 열선에 이르기까지의 광역의 전자파에 감광된다. 이런 방사선들은 빛과는 사뭇 다른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의 도움으로 촬영된 사진들은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보기 어려운 현상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갖가지 특수한 감광유제는 주로 전문가들 (천문학자, 천체 물리학자, 의학 연구가, 생화학자, 의사 ( X선 ) , 군인 )( 자외선 ) , 및 범죄학자 ( 적외선에 의해 활용되고 있지만 , 큰 재료상에서 파는 적외선 필름은 일반 사진가가 써도 좋은 것이다.
적외선 필름에는 흑백용과 칼라용 두가지가 있다. 적외선은 아지랑이층을 통과할 수 있기 때문에, 적외선 필름으로 촬영된 사진은 보이지 않는 저편의 현황을 정밀하게 보여준다. 흑백용 적외선 필름은 푸른 잎새는 희게, 대양(大洋)은 검게 묘사된다. 그리고 적외선 칼라 사진에서는 푸른 잎새가 밝은 빨강으로 나타난다. 적외선 사진으로 촬영할 때엔 반드시 특수한 필터를 사용해야 하므로, 필름에 동봉된 사용 설명서를 꼭 읽어 보기 바란다.
12. 요약
다른 예술이나 공예와 마찬가지로, 사진에도 일정한 범위와 한계가 있다. 어떤 테마는 사진의 표현양식을 빌려야만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으며, 또 어떤 테마는 회화의 표현양식을 도입해야만 큰 성과를 거두게 된다는 말이다. 이런 비교를 해보자:
나무와 금속은 모두 유용한 물질이지만 용도를 서로 바꿀 수 없다. 각각에는 독특한 용법이 있으며, 고유한 성질, 외양, 응용분야를 갖고 있다. 이를테면 나무로 탄환을 만들거나 , 철로 개머리판을 만들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림을 모방하기 위하여 사진술을 도입하는 사진가 치고 뛰어난 사람이 없으며, 사진적인 효과를 내려고 회화에 열중하는 화가치고 빼어난 사람이 없다. 자기가 전문적으로 다루는 매체의 한계를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애써도 저질의 작품을 낳을 따름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사진의 범위와 한계는 그 미디어의 잠재력과 특성에 의하여 그어진다.
요약하면: 카메라는 일종의 기계이다. 그의 산물인 사진은 본질상 진정한 것이다. 따라서 이런 기계적인 정밀성을 무시하고 연출, 수정, 손질 등을 가하여, 영상의 진실성을 저해하려는 행위(영업용 사진은 진실성에서는 제외시킨다고 본다. 그러나 그 본질은 같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는 사진술의 기본정신에 어긋나며, 결국 필연적으로 저질의 작품을 만들게 된다.
카메라가 하나의 기계라고 하는 말은 사진술이 완전히 기계적인 프로세스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를테면 피아노를 일종의 기계장치로 보는 것과 비슷한 논리이다.
피아노든 카메라든 그의 사용법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별로 가치가 없다. 어떤 어린이라도 악보대로 피아노를 쳐서 단순한 가락을 낼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이 때 피아노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고 말할 자는 없을 것이다. 한편 경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스냅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러나 스냅 셔터가 반드시 의미심장하고 흥미로운 사진은 아닐 것이다. 피아노의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위대한 피아니스트라 불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카메라의 잠재력을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뛰어난 사진가라 불리는 법이다. 모름지기 사진가는 다음의 사항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 렌즈는 영상을 기록함에 있어 육안 이상의 기능을 발휘한다. 사진은 인기 있는 회화의 대용품이 아니다. 카메라는 인간의 시야를 넓혀 주는 기구이다. 사진술의 잠재력과 특성을 활용할 줄 아는 사람만이 늘 뛰어난 작품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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