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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사진 이야기

사진가의 단계

 

아래의 글은 싱가포르에서 발행되는 영문판 사진전문 월간지 "PHOTO ASIA"'의 94년 8-9월호에 실린 기사를 발췌한 것입니다. 

원제목은 "THE LIFE CYCLE OF A PHOTOGRAPHER-PART1, PART2"이며 글쓴이는 동잡지사 소속기자인 T.O.LEE입니다.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처음으로 사진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한 사람의 완숙한 작가로서 성장하는가를 다섯 단계로 나누어 간단하지만 흥미롭게 설명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거쳤거나 앞으로 거치게 될 과정들이 재미있게 서술되어, 누구나 자신의 위치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라 생각되기에 함께 공감해보고 싶은 마음에서 몇 번에 나누어 소개해드립니다. 

우리와는 문화적, 경제적 차이가 있을 수도 있고, 저 자신의 짧은 식견 때문에 옮김에 있어 오류를 범할 수도 있음을 먼저 고백합니다. 

( THE LIFE CYCLE OF A PHTOGRAPHER - PART 1 ) 



첫 단계 : 완전 초보 (THE BEGINNER) 

많은 사람들은 친구들 중의 누군가가 촬영한 아름다운 사진작품,또는 우연히 방문한 전시회에서 본 사진에 매료되어 처음으로 사진 동아리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이 시점에서 그들은 예술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는 처지이지만, 매우 겸손하고 개방적이며, 열정적이면서 또한 우호적이다 

자신의 약점을 쉽게 드러내 보이고, 자기보다 많이 안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누 구라도 붙잡고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데 주저함이 없다. 

또 자신이 스승으로 모시고 배울 수 있는 작가를 찾아 다니기도 한다. 

이 단계에서 그들은 늘 행복하고, 사진이라는 것이 정말로 배울 것이 많은 멋진 예술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때로 자신에게 전혀 생소하게 느껴지는 현대 사진을 보면,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소양을 갖추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기도 한다. 

또한 그 작품의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 여러 방면의 지식을 얻고자 끊임없이 노력을 하며,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라도 알려고 애를 쓴다. 

그들은 그 누구와도 논쟁을 벌이지 않으며, 심지어 며칠 전에 어떤 선배에게 들은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말과 맞지 않을 때도 다투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 때의 그들은 매우 감수성이 예민하고 어느 누구와도 친하게 지낼 수가 있는 시기인 것이다. 



두 번째 단계 : 아마추어 (THE AMATEUR) 

 

한두 해가 지나면 그들은 초보자의 딱지를 떼고 점차 아마추어 작가로 접어들게 되며, 처음에 가지고 있던 전자동 렌즈 셔터 카메라를 처분하고 일안리플렉스(SLR) 카메라를 사용하게 된다. 

35MM, 50MM, 85MM 정도의 렌즈 서너 개와 자동 플래시면 만족해 하면서 그들은 자신이 배운 스승의 영향을 매우 강하게 받으며 스승이 쓰거나 권하는 종류의 카메라를 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때는 또한 스승의 가르침을 주저 없이 받아들이는 시기이다. 

그들은 때로 결혼이나 생일, 또는 다른 사교모임 등에서 스스로 사진 촬영을 자원하고 나서기도 하며 물론 돈을 받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사진을 전해 받은 사람의 고맙다는 인사만으로도 흡족해 하는 것이다. 

직업 사진가들은 이들이 자신의 손님을 빼앗아가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결혼식 같은 중요한 행사에는 이들 말고도 직업 사진가들을 안전 대책으로 고용하는 경우가 많다. 

주최 측에서는 손님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 이 아마추어들이 많이 와주기를 환영하며, 이것이 바로 어느 결혼식장에서 내가 본 다섯 명의 아마추어들이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이유였을 것이다. 

직업 사진가는 그들이 주인의 친구들이기에 자신의 작업에 많은 지장을 받으면서도 따지려 하지 않고 웃는 모습만 보여줄 따름이다. 

이 아마추어 작가들은 3"X5" 사이즈의 사진을 주고 나서도 8"X10"정도의 확대 사진을 추가로 보내주며 이때 그들은 비용 따위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들은 풍경사진 이나 포츄레이트 등을 주로 추구하는데 왜냐하면 그런 주제들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더욱 쉽게 감사와 칭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멋진 풍경 속에 서있는 미녀를 앞에 두고서, 좋은 사진을 만들기 위해 그들이 할 일은 단 한 가지, 셔터를 누르는 것뿐, 그 나머지는 자동 SLR 카메라 스스로 알아서 처리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단계에서도 그들은 아직 개방적이고 열정적이며, 겸손하고도 우호적이다. 

물론 그들은 친구나 친척들에게 더 많은 공짜 사진을 선물하고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그들은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들과 스승의 관계는 더욱 밀접 하게 되고 그들은 행복에 푹 빠져 지내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 : 진지한 아마추어 (THE SERIOUS AMATEUR) 

이 단계에서 그들은 더욱더 많은 장비들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그들은 35MM판에서만 해도 CANON EOS 5, NIKON F3, MINOLTA 9000 등 3가지 정도 시스템의 렌즈와 액세서리 세트들을 갖추게 될 것이다. 

그들은 또한 645,6X6판 같은 중형판으로 돌입할 수도 있다. 

HASSELBLAD정도가 자신의 개인적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좋은 선택 수단이 될 것이다. 

그들은 특히 전문가용 BLACK BODY 스타일로 모든 장비를 통일하고 그러므로 해서 자신이 명성 있는 사진가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된다. 

그들은 새롭고 신기한 장비들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거의 해마다 새 장비로 교체함으로 해서 최신의 경향에 발맞추려 한다. 

카메라 메이커들에게 있어, 규모의 경제를 통한 생산원가 절감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바로 이들 진지한 아마추어들이다.

그들은 온갖 종류의 장비 카탈로그를 수집하고 메이커 별로 기능과 모양을 비교하려 애쓰기도 한다. 

그들은 또 다른 진지한 아마추어를 만나면 최신의 장비에 관한 얘기만 늘어 놓고 싶어 한다. 

새로 시판되는 신모델의 최초 사용자는 바로 그들이다. 

최신 기종이 본국(일본을 지칭하는 듯 합니다)에서는 시판되었지만 아직 자기 나라에 들어오지 않았을 때 그들은 암시장의 밀수입자들에게, 비용이 얼마가 들던 개의치 않고 그 제품을 구해다 줄 것을 요구한다. 

그들은 또한 최근의 주요 사업경향이 된 한정판 모델을 수집하기도 한다. 

월드컵 공식 기념 모델, 올림픽 기념 모델, 생산 50주년 기념 모델 등등이 바로 이런 부류의 사진가들을 위해 생산되는 것이다. 

그들은 차츰 자신의 주장(또는 사상)을 형성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 이지 않으려 한다. 

그리하여 점점 폐쇄적이 되고 사진의 예술 그 자체보다는 장비와 외형적인 면에만 집착하게 된다. 

그들은 이제 혼자만의 사진을 하려한다. 

새로운 사진 소재가 있는 장소나 참신한 모델을 발견하게 되면 그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을 위해 남들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진공모전에서 더 많이 입상하기 위해서 자신이 즐겨 쓰는 특수기법을 감추려고 한다. 

사진전람회 등의 활동에 적극 관여하며 서기, 총무 등의 직함을 가지고 집행부의 일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들은 자기만족에 빠져버린 채, 여전히 열정적으로 매우 행복해 하는 것이다. 



네 번째 단계 : 작은 명인 (THE SMALL MASTER) 

국내와 또 해외의 많은 공모전에서 수 차례 입상을 해오면서, 우리의 진지한 아마추어들 은 이제 작은 명인이 되어간다. 

풍경이나 인물사진, 정물, 스포츠 등과 같은 일정 분야의 전문가로서, 그들은 이제 많은 초보자와 아마추어들의 스승이 되어, 옛날의 화려했던 경력을 자랑하면서 그들의 아첨을 받으며 지내는 것이다. 

많은 아첨꾼들에게 둘러싸여,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난날의 화려한 영광 속에 안주하기 시작한다. 

가끔씩 지방 공모전 등의 심사위원으로 추대되기도 하는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 에는 후한 점수를, 그렇지 않은 작품에는 낮은 점수를 매기곤 한다.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의 여부가 그들의 심사 대상작에 대한 예술적 기준을 정하는 가장 큰 잣대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개방된 전시회에서까지 자신의 이런 기준을 적용시키며, 전시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의 추종자들에게 "모두 졸작들"이라 매도해 버린다. 

그들은 점점 더 주관적이고 속 좁은 사람이 되어간다. 

다른 사람의 작품에 대한 그들의 평가는 점차 비판적이 되어가고 소문이 빠르게 퍼져, 무의식 중에 그들은 사진계에서 많은 적을 만들게 된다. 

그들에게 있어 전시회에 가는 것은 더 이상 그의 안목을 넓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기준에 맞춰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종종 이런 작은 명인들이 추종자 무리들을 이끌고 이쪽저쪽을 다니면서 작품을 가리키며 하는 비판을 듣곤한다. 

"만일 나라면 카메라를 더 왼쪽으로 옮기고 좀더 광각계통의 렌즈로 이 주제 부분을 더 많이 커버해서 더욱 강한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나라면 이 부분을 더욱 잘라냈을 텐데, 이 하늘 부분은 잘라내는 것이 한층 효과적일 거야." 



... 

등이 내가 전시장에 갈 때마다 듣게되는 그들의 비평론이다. 

그들은 이제 새로운 지식으로 향한 문을 걸어 잠근 채 어떠한 새로운 경험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의 발전과 진보는 없다. 

몇 년이 흐른 후 그들은 시각 예술분야의 현대적인 조류에서는 저만치 뒤처지게 되어. 결국 눈과 귀가 모두 멀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헌신해온 추종자들도 새로운 스승을 찾아 자신의 곁을 떠나버리는 결과를 맞게 된다. 

그들은 왜 그런 일이 생기는지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대신에 자신에게서 가르침을 받고도 등을 돌려버린 추종자들이 얼마나 배은망덕한가를 친구들에게 얘기함으로 해서 동정심을 얻고자 할 따름이다. 

사진가로서, 그의 눈은 완전히 멀어버린 탓에 그 자신조차도 분명히 볼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들은 스스로 사진예술계의 명작 중의 하나라고 믿고 있던 자신의 작품에 존경심을 보이지 않는 세상을 원망하며 지내게 된다.

그는 고립된 무인도처럼 외로운 처지이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는 작은 명인으로서 여생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다섯 번째 단계 : 진정한 명인 (THE REAL MASTER) 

만약 작은 명인이 아직도 개방적이고, 객관적이며,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에 헌신적이고, 겸손하며, 친절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그는 마지막 단계인 '진정한 명인'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진정한(REAL)'이란 말은 스페인어에서는 '왕의 경지(KINGLY)'와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들은 매우 개방적인 심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사물을 보게 되면,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여러 방면의 시각에서 생각을 해보며 절대 성급한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만의 소중한 비법을 남들에게 나누어 주어서 남들이 성장할 수 있게 돕는다. 

또한 그들은 제자들에게 자신과는 다른 사진경향을 접하고 배우도록 격려하여 궁극적으로는 자신만의 사진 스타일을 스스로 창조하도록 이끌어준다.

그들은 점차 장비에의 의존도를 줄여나간다. 

제자들에게도 "어떤 카메라든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하고 가르친다. 

"사진가로서 자신이 카메라를 지배해야지, 카메라가 자신을 지배하도록 해서는 안된다." 

"훌륭한 작품을 못만드는 것을 조명이나, 날씨, 또는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지 말라. 당신의 작품에 대한 모든 책임은 바로 당신에게 있는 것이다." 

"당신의 과거를 나타내는데 있어, 트로피 같은 것들은 별 의미가 없다. 당신의 과거를 말해줄 수 있는 것은 당신의 작품뿐이다." 

"창조하기 위해서, 또한 진보하기 위해서 당신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내가 만난 진정한 명인들에게서 들은 말이며, 그들의 생활이나 작품 활동 또한 이런 원칙을 지키고 있다. 

배우지 않고는 창조할 수 없다. ( NO INPUT, NO OUTPUT ) 그리하여 진정한 명인은 하나를 깨우치고 또 다른 새로운 것을 깨우치기 위하여 일생 동안 배우고 또 배우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세상에서 진정한 명인은 아주 드물다. 
진정한 명인이 말을 아끼며 더 많은 창작을 하는 동안, 사진계에서 분란을 일으키고 잘난 척하는 이들은 대부분 작은 명인 (SMALL MASTER)들이다. 



정말 맘에 와 닿는 말이네요.. 카메라를 지배해야지 카메라에게 지배당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