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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사진 이야기

자판기 사진

자판기 사진

 

사진이 다른 예술 장르와 다른 것 중의 하나는 눈앞에 보이는 것을 찍는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찍을 수 없기 때문에 조금 전 지나간 것, 조금 후면 다가올 것, 겉으로 드러낼 수 없고 오직 마음에만 담고 있는 것, 혹은 욕망, 번민, 고통, 쓰라림처럼 그저 내적 감각으로 자리하는 것들은 사진으로 찍을 수 없다. 

때문에 사진이 오직 보이는 것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선택이 따른다는 점이고, 또 보이는 것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상당히 우연성이 작용한다. 흔히 “사진은 발로 찍는다”라는 말을 하는데 여기에는 부단히 걸어야 많이, 여러 가지를 볼 수 있고, 또 많이 걸어야 우연히 마주치는 것도 많다는 뜻을 담고 있다. 

문제는 그러다 보니 사진을 발견의 예술 혹은 선택의 예술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의 더 큰 문제는 “사진은 어딘가에 있다”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진이 분명 발견의 매력이 있고, 어딘가를 감으로써 멋진 사진도 “기대”할 수 있고 또 요행히 멋진 사진을 “건질” 수 있다. 기대와 건짐이 사진의 묘미가 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러나 이것들은 선후가 바뀐 것이다. 즉 생각이 있고, 사유가 있고, 철학이 있는 상태로 어딘가에 갔을 때 기대와 건짐이 충족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사진의 고수인가? 또 어떤 사진의 내공이 깊은 사람인가? 고수와 하수의 차이, 혹은 깊은 사람과 얕은 사람의 차이를 아는 것은 너무도 간단하다. 예를 들면 한 가지는 생각을 갖고 찍는 사람인가, 생각을 없이 찍는 사람 인가로 구별되는데 이것은 제목에서 금세 나타난다. 그러니까 제목(주제)을 갖고 찍는 사람이면 고수이고, 찍고 나서 제목을 붙이면 하수이다. 또 늘 찍는 것보다 제목 붙이는 것을 더 어려워하는 사람은 하수 중의 하수이다. 그것은 생각 없이 찍었다는 것이고 또 자신에게 일관된 주제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는 출사의 모습에서 알 수 있다. 사전에 그곳으로 출사를 가야하는 이유에 대해서 논의를 하고, 그곳이 선택된 이유는 무엇인지, 그곳에 갔을 때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지 사진미학과 관련된 정신적, 물질적인 고려가 있는 늘 사람은 고수이고, 일단 정하고 가면서 천천히 생각하자는 사람은 하수이고, 가는 것이 장땡이라고 하는 사람은 하수 중의 하수이다. 또 한 가지는 혼자 찍는 것을 즐기는가,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찍는 것을 즐기는가 보면 알 수 있다. 고수, 내공이 깊은 사람은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사진 찍을 수 없다. 그 이유는 너무 자명하다. 자기만의 철학이 있고, 그 철학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때문에 하수들은 무더기로 몰려다니고, 함께 찍으러 다녀야 안심이 되고 사진 하는 것이 즐겁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당연히 혼자 세상과 만나려 하는 사람은 고수이고, 여럿이 몰려다니면서 함께 따라 찍는 사람은 하수이다.    

고수든 하수든, 혹은 내공이 깊은 사람이든 얕은 사람이든 출사(出寫, 사진여행)는 간다. 출사는 사진적 감각을 익히는데 중요한  필드 트립(field trip, 견학)이기 때문에 누구나 수시로 갈 수 있어야 한다. 또 필드 트립이 사진가의 사유와 철학을 이미지로서 구체화 하는 무대이자 자신의 생각을 이미지 메이킹하는 케이스 스터디(case study, 사례연구)의 산실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출사는 중요하다. 이처럼 출사가 사진을 하는데 주요 교육무대이고, 실전훈련무대이고, 또 사유와 철학을 구체화하는 학습과 학문의 무대이기 때문에 필수불가결하다. 사전에 출사의 목적, 장소, 준비에 토론이 없고, 출사를 가는 도중, 출사 현장에서도 생각과 행태의 분명함이 없고, 또 돌아와서도 결과에 대한 이성적 토론, 생산적 결과물이 없는 출사는 내공이 없는 하수들의 출사이다.  

문제는 이런 모습들이 스스로 사진을 깎아내리고, 상대 사진가를 얕잡아보고, 또 자기만 찍고 자기만 우월하다는 이기심을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또 사진을 공부가 필요 없는, 이론과 철학이 필요 없는, 열심이 쫓아다니다 보면 한 장 건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좋은 곳에 출사를 가면 그곳에 사진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주 어디론가 출사를 가야만 사진이 되고, 그곳에 갔을 때 멋진 사진을 손에 쥘 수 있다는 환상과 착각에 사로잡혀 요번 주, 다음 주, 다다음주 출사지를 미리 자판기 커피 선택하듯 선택해 놓고 전국일주 사진코스 탐방에 나선다. 

이런 행태들의 결과가 가져올 가장 큰 슬픔과 불행은 국가적인 관점에서 세 가지 모습이다. 하나는 장비를 사재기하여 외화를 낭비한다는 것이고, 환경을 오염(필름의 경우)시킨다는 것이고, 외화 낭비에 비해서 거의가 이미지 사냥꾼들이어서 국가 문화(사진)역량 증대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큰 슬픔과 불행과 비극은 그렇게 한평생 사진을 해도 단 한 장의 사진도 자랑스럽게 내놓지 못하고 죽거나, 평생 사진한 것 같은데 사진 했다는 족적 하나 없이 사라져 간다는 것이다. 

사진은 자판기에서 즉흥적으로 선택되는 커피가 아니다. 즉흥적 선택이 아니라, 마음에 깊은 곳에 우물을 파고 그 깊은 우물이 내는 공명과 깊은 우물질을 통해 마시는 깊은 샘물과 같은 것이다. 그런 우물을 저마다 마음에 지닐 때 사진을 가볍게 보지 않고 모든 사진을 존귀함으로 바라보게 된다.


출처 : 하우포토, 진동선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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